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여수·순천 10.19 사건 (문단 편집) ==== 반란으로 평가 ==== [[김대중 정부]] 이전까지는 반란으로 평가하며 흑역사취급하는 관점이 주류였다. 정병준 교수는 반란이라 평가한다. >"이 반란은 자연 발생적이며 거의 무계획적이었다. 하사관과 사병 몇몇이 시작한 군사 반란은 몇 시간 만에 2000명 규모의 폭동으로 발전했다. 여수에서 시작된 반란은 인근 도시 순천으로 번졌고 곧 전라남도 전역을 휩쓸었다. '''반란 세력은 지역 토착 공산주의자들과 결합해 군인 반란을 지역 폭동으로 전환시켰다.''' >(중략) >'''관공서와 경찰서 등 공공 기관이 습격을 당했고, 최소 2000여 명이 사망했다. 이 당시 발생한 여타의 많은 사건들과 같이, 이는 하나의 운동이라기보다는 폭동의 모습을 띠었다'''." >---- >정병준, "한국전쟁" 233페이지 1994년에 여수문화원은 이 사건의 이름을 '14연대 반란사건' '10 20 사건' '여수주둔 군인반란사건' 중 하나로 고쳐줄 것을 정부에게 요청했다.[* 김득중, 麗順事件 李承晩 反共體制 과 의 구축, 8페이지 참고] 14연대가 반란을 일으켰는데도 마치 여순 주민들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오해를 불러일으켜 지역 명예가 실추된다는 사유로 14연대 반란으로 수정하기를 바란 것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